한글 이야기

1920~30년대 신문에서 본 ‘요즘 말’

온테라 2025. 4. 3. 09:02

신문은 말의 실험장이었다 

1920~30년대는 조선이 식민지 체제 아래에서 근대화 과정을 겪으며 정치, 경제, 문화 전반에 걸쳐 격변을 맞던 시기였다. 이 시기 신문은 단순한 뉴스 전달 수단을 넘어, 새로운 언어를 실험하고 대중화시키는 매우 역동적인 언어 공간이었다. 특히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외일보’, ‘매일신보’ 등은 독립운동과 계몽 활동을 병행하며 당대의 새로운 가치와 사상, 개념어를 언어로 포착하려는 시도를 지속했다.
이 시기 신문에는 ‘문명’, ‘개조’, ‘자유’, ‘교육’, ‘사상’과 같은 한자 신조어들이 빈번히 등장했으며, ‘모던’, ‘레이디’, ‘레코드’ 같은 외래어도 점차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이 말들은 서구의 정치·철학·사회 제도를 설명하기 위해 번역되거나 새롭게 조어된 경우가 많았다. 단순히 신문 용어가 아니라 당시 조선 사회가 새롭게 받아들이고 소화해낸 개념이기도 했다. 신문은 이 단어들을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해설하거나 예시를 들어 설명하며 대중의 언어 습득을 도왔다. 그 결과 이 ‘신조어들’은 오늘날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쓰는 한국어 어휘로 정착하게 되었다.

 

 

1920~30년대 신문에서 본 ‘요즘 말’ – 근대의 언어 실험장에서 탄생한 오늘의 한국어

 

‘요즘 말’의 원형 : 번역어와 신개념어의 유입

 

지금은 너무 익숙해서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지만, ‘사회’, ‘정치’, ‘과학’, ‘문화’, ‘경제’, ‘민중’ 같은 단어들은 모두 이 시기를 통해 널리 퍼진 개념어들이다. 일본 메이지 시기를 거쳐 형성된 한자 기반 번역어들이 조선 지식인층을 통해 수입되었고, 신문은 그 유통의 중심에 있었다.
예를 들어, ‘자유’는 영어 ‘liberty’를 번역한 말로, 처음에는 생소했지만 언론을 통해 반복적으로 노출되며 ‘억압 없는 상태’라는 개념이 자연스럽게 인식되기 시작했다. ‘민주’, ‘혁명’, ‘노동’, ‘계급’ 같은 단어들 역시 일제하의 정치 상황 속에서 사용되면서, 한편으로는 검열과 단속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국민 계몽의 도구로 기능했다.
당시 신문 기사에는 이러한 단어들을 사용한 논설문이나 칼럼이 즐비했다. 심지어 만평이나 시사풍자에서도 이 개념어들이 위트 있게 활용되며 독자들의 공감대를 형성했다. 즉, 1920~30년대 신문은 새로운 개념을 대중의 언어로 전환해내는 '말의 번역기'이자 문화적 중계자였다.

 

 

광고와 유머란에서 피어난 ‘감각적인 언어’

신문은 딱딱한 기사만 있는 곳이 아니었다. 당시 신문 속 광고와 유머란, 독자투고란은 보다 유연하고 창의적인 언어 실험의 장이었다.
예컨대 화장품 광고에는 “백옥 같은 피부”, “모던 여성이 되는 법” 등 지금 봐도 세련된 표현들이 많았다. 이는 단순한 상품 홍보가 아니라, 새로운 소비 가치와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말이었다.
또한 ‘모던걸’, ‘신사’, ‘신여성’, ‘연애’ 같은 표현들은 단순한 유행어가 아니라, 그 시대 청춘들의 정체성과 감성을 반영한 언어였다. 특히 ‘모던’이라는 말은 시대를 이끌던 새로운 감각을 상징하며, 여러 기사와 칼럼에 스며들어 있었다.
유머란에는 ‘총각의 고민’, ‘학생의 연애’ 같은 익살스러운 이야기가 줄을 이었고, 그 안에는 풍자, 위트, 그리고 신조어의 실험이 있었다. 예를 들어 ‘대세’, ‘인기’, ‘미인형’, ‘스타일’ 같은 표현들이 사용되며, 감각적인 말맛이 살아 숨 쉬었다.

 

 

지금 우리가 쓰는 ‘요즘 말’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오늘날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수많은 단어들  예) 진보, 청춘, 여성, 권리, 시민, 이상, 감성 등은 사실 192030년대 신문 속에서 ‘요즘 말’로서 처음 등장하거나 정착된 단어들이다.

그 시기의 지식인들이 외래 개념을 번역하고, 신문이 이를 반복적으로 노출시키며, 대중은 이를 흡수하고 응용했다. 그 결과 이 단어들은 단순한 정보 전달 수단이 아니라, 시대를 정의하고 사고를 이끄는 도구가 되었다.

더 흥미로운 점은, 그 시기의 신문 표현 방식이 지금까지 이어진다는 것이다. 예: ‘○○의 길’, ‘△△를 말하다’, ‘○○ 시대의 얼굴’ 같은 제목은 당시 사설과 논평의 전형적인 문법이었고, 오늘날 기사, 칼럼 제목에서도 여전히 쓰이고 있다.

즉, 우리는 지금도 100년 전 신문의 문법을 따라 말하고, 생각하고, 글을 쓰고 있는 셈이다.

192030년대 신문은 단지 시대를 반영한 기록이 아니라, 지금 한국어의 표현 방식과 어휘 체계를 설계한 거대한 실험장이었다. 그 안에서 태어난 ‘요즘 말’은 여전히 우리 일상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