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이야기

한국 근대 소설 속 인물들이 쓴 우리말 표현 분석

온테라 2025. 4. 4. 09:00

— 문학에서 발견한 시대의 언어, 그리고 사람들

 

 

한글 근대 문학, 그 시절 말의 창고

한국의 근대 소설은 단순한 이야기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한글로 쓰인 소설 속에는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감정, 사고방식, 그리고 일상적인 말투가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특히 191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발표된 작품들은 한글의 독자적 쓰임과 정서의 변화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언어 자료로서도 의미가 깊습니다.

예를 들어, 이광수의 『무정』, 염상섭의 『삼대』,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같은 작품들을 보면,
오늘날은 잘 사용하지 않는 말들이 한글로 자연스럽게 기록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글로 표현된 소설 속 ‘그때의 말투’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에서 주인공 김 첨지는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은 아주 운수가 좋소. 부잣집 하인이 부르더니, 아침부터 동양집 앞까지 태워다 주지 않겠소!”

이 장면에서는 다음과 같은 한글 표현의 시대적 특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운수가 좋소’: 오늘날에는 ‘운이 좋다’라고 말하지만, 당시에는 ‘운수’라는 한자어를 그대로 한글로 사용했습니다.
  • ‘~겠소’: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는 높임 어미로, 존댓말과 반말 사이에서 절제된 정서를 담아내는 한글 어투입니다.

당시 한글의 존칭 표현은 상대와의 거리, 상황, 신분을 세밀하게 구분하며 사용되었습니다.
남녀 간, 친구 간, 상하 관계마다 말투의 높낮이와 어휘 선택이 분명히 달랐습니다. 

 

한국 근대 소설 속 인물들이 쓴 우리말 표현 분석

 

문장 어투에서 드러나는 한글 감정의 결

이광수의 『무정』에서는 다음과 같은 표현이 등장합니다:

“형님, 나는 지금 마음이 울적하여 견딜 수 없습니다.”
“그대의 말씀을 곰곰이 새겨보니, 나도 심히 미안한 감이 있습니다.”

이 문장들에서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돌려 말하거나 정제된 문장으로 표현하는 한글 특유의 어법이 보입니다.

  • ‘울적하여’, ‘심히 미안한 감’: 현대에서는 잘 쓰이지 않지만, 감정을 억제하면서도 정중하게 전달하던 한글 표현입니다.
  • ‘그대’, ‘곰곰이 새겨보다’: 지금은 문학적 감성으로 사용되지만, 당시엔 일상어였던 한글 단어들입니다.

이러한 표현은 근대 문학이 ‘말의 감정 밀도’를 어떻게 다루었는지를 보여주는 한글의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낯선, 근대 한글의 언어 감각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에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등장합니다:

“이보게, 자네 요새 사는 꼴이 하 참 보기 딱하네.”
“그런 말씀 말게나. 나도 어찌할 바를 모르네.”

이 장면에서는 근대 한글이 지닌 호칭과 말씨의 다양성이 드러납니다.

  • ‘이보게’, ‘자네’, ‘말게나’: 현대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지만, 당시에는 흔하게 쓰이던 친구 간의 호칭과 정감 있는 한글 표현입니다.
  • ‘꼴이 딱하네’: 지금보다 훨씬 직접적이고 진중하게 감정을 표현하던 한글 어투입니다.

근대 소설 속 대화는 지금보다 정중하면서도 단단한 말의 결을 보여주며,
우리가 잊고 있던 한글 말의 미묘한 온도를 되살려 줍니다.

 

 

소설은 사라진 한글 표현의 박물관

한국 근대 소설에 등장하는 한글 표현들은 단순히 낡은 말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당대 사람들의 사고방식, 말의 태도, 사회적 관계가 언어로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소설 속 한글을 통해 다음과 같은 의미를 되새길 수 있습니다:

  • 사라진 높임 표현의 뉘앙스와 쓰임을 이해하고,
  • 지금의 한글 존댓말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따라가며,
  • 한글이 문학 속에서 정착해 가는 과정과 문화적 의미를 재조명할 수 있습니다.

한글은 단순한 문자의 조합이 아니라, 한 시대의 감정과 생각을 담은 그릇입니다.
근대 소설은 그 한글이 가장 섬세하게 살아 있는 언어적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