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을 닮은 말들 – 옛 사람들은 이렇게 계절을 불렀다

– 계절을 바라보는 마음, 한글로 남기다 –

 

 

한글 속에 담긴 계절의 감성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입니다.
봄이 오면 마음도 부풀고, 여름이면 짜증과 설렘이 함께 찾아옵니다.
가을은 사색과 풍요의 계절이며, 겨울은 고요 속 따뜻함을 기다리는 시간이지요.
이러한 계절의 감정을 한글로 표현하면 어떤 풍경이 될까요?

현대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단어로 계절을 구분하지만,
한글의 어휘 유산 속에는 계절을 훨씬 더 섬세하게 표현한 순우리말들이 존재합니다.
이 말들은 단순히 날씨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계절을 살아낸 사람들의 감정과 감각까지 담고 있습니다.
오늘은 잊혀진 계절 어휘를 통해,
한글이 품고 있는 계절의 온도를 함께 되새겨보고자 합니다.

 

 

봄을 부르는 한글 — 생명과 설렘의 어휘들

봄은 생명의 시작이자, 새로운 기운이 솟아나는 계절입니다.
한글 속 순우리말 표현에서는 봄을 이렇게 아름답게 불렀습니다.

• 새봄: 겨울 끝에 새롭게 찾아오는 봄. 시작의 상징입니다.
• 풀빛새: 막 돋아나는 새싹의 연두빛을 담은 말.
• 꽃바람: 꽃향기를 머금은 봄바람. 마음을 들뜨게 합니다.
• 살강살강: 봄기운이 스며드는 모습이나 감각을 표현한 말.

이러한 계절 어휘는 ‘봄이 왔다’보다 더 풍성하고 감성적인 언어입니다.
한글은 자연을 단순히 관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흐름에 감정과 생기를 불어넣었습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봄이 왔다”는 대신
“새봄이 들었다”, “살랑바람이 분다”와 같은 표현을 즐겨 사용했습니다.
이러한 언어 습관은 계절과 감정이 하나였던 삶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여름과 가을, 강렬함과 여운의 언어

여름은 햇볕, 장마, 매미소리, 풀냄새 등 강렬한 감각의 계절입니다.
한글 표현 속 여름은 다음과 같은 단어들로 채워졌습니다.

• 마지기: 햇살이 쨍쨍 내리쬐는 뜨거운 날씨.
• 소나기: 갑작스레 퍼붓는 여름비. 오늘날까지 널리 쓰입니다.
• 초롱초롱: 여름밤 별빛처럼 반짝이는 눈빛이나 분위기.
• 모시바람: 얇고 시원한 여름 옷감을 닮은 산들바람.

가을은 수확과 회상의 계절이며, 감정적으로는 여운과 쓸쓸함이 배어 있습니다.

• 서늘바람: 더위를 밀어내는 선선한 바람.
• 하늬바람: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 들꽃잠: 가을 들판에서 잠든 것 같은 정취.
• 누리단풍: 누런 빛을 띠는 단풍. 가을의 시각적 상징.

이처럼 한글 계절 표현은 단어 하나에 자연, 감정, 색채를 함께 담고 있으며,
계절마다 변하는 사람의 마음을 언어로 연결해줍니다.

 

 

겨울의 말들 — 고요하고 따뜻하게 남겨진 표현

겨울은 단지 차가운 계절이 아닙니다.
한글 속 겨울 표현은 오히려 고요, 기다림, 따뜻함이 중심이 됩니다.

• 눈꽃: 눈이 꽃처럼 피는 모습. 아름다움을 강조한 표현입니다.
• 바람서리: 바람을 타고 오는 서릿발.
• 쓸쓸하다: 겨울 특유의 정서. 고요함 속 마음의 공허함을 담습니다.
• 동짓달: 음력 11월을 뜻하며, 겨울을 상징하는 옛 표현입니다.

또한 ‘호호 불다’, ‘꼬드라지다’, ‘포근하다’ 같은 표현들은
날씨뿐 아니라 사람의 몸과 마음 상태를 묘사해줍니다.
한글의 계절 언어는 기후를 기록하는 도구를 넘어,
그 계절을 사는 사람의 감정과 행동까지도 기록한 언어였습니다.

 

 

우리가 다시 불러야 할 계절의 이름들

사계절은 누구에게나 반복되지만,
그 계절을 어떤 언어로 부르느냐는 문화의 차이입니다.
한글 어휘 속 계절 표현은 단순한 옛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연을 향한 존중, 감정을 다루는 섬세함, 삶의 속도를 담은 말의 철학입니다.

오늘날 ‘봄’, ‘여름’, ‘가을’, ‘겨울’만으로는 담기 어려운 감성들을
한글 계절 표현은 세밀하게 복원해냅니다.
‘꽃바람’, ‘서늘바람’, ‘눈꽃’, ‘들꽃잠’ 같은 말들은
단어 하나에 계절의 결과 온도를 담은 언어입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러한 한글의 계절 표현을 기억하고 다시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는 단지 옛말을 되살리는 것이 아니라,
잊고 있었던 삶의 속도와 자연에 대한 감각을 되찾는 일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