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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하다', '그윽하다' — 풍경을 말하는 감성형 단어들

– 소리가 없는 소리, 빛이 없는 색으로 그려낸 우리말의 정서 –  소리를 덜어낸 말, 감정을 더하다자연의 풍경을 표현할 때, 한국어는 소리를 덜어내고 감정을 더한다. ‘고요하다’와 ‘그윽하다’는 단어는 그 대표적인 예다. 소리 없는 상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가라앉는 정서와 분위기를 표현한다. 한국어에는 이러한 감성형 단어들이 유독 많다. 눈으로 보는 것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감각까지 언어로 옮긴 것이다. 이는 자연과 함께 살아온 한국인의 삶이 언어에 투영된 결과이자, 풍경을 단순한 장면이 아닌 정서적 체험으로 받아들인 문화적 표현방식이다.‘고요하다’ — 정적 속의 생명을 담은 말‘고요하다’는 흔히 ‘조용하다’의 유사어로 여겨지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훨씬 더 깊다. ‘조용하다’가..

한글 이야기 2025.04.09

한국어 속 숫자 표현 — 갓난아이부터 백세까지

– 숫자에 담긴 생애의 흐름, 말로 새긴 나이의 풍경 –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된 숫자의 말한국어에서는 숫자가 단순한 수치를 넘어, 인생의 어느 지점을 상징하는 말로 쓰인다. 특히 ‘나이’를 표현할 때 숫자는 곧 존재의 위치와 정체성을 말해주는 지표가 된다. 갓 태어난 아기를 두고 ‘갓난아이’, 혹은 ‘백일 아기’라고 부르며, 숫자를 통해 생애의 단계를 구체적으로 구분해 왔다. 흥미롭게도 ‘갓난’은 ‘막 낳다’는 뜻의 고유어 ‘갓나다’에서 유래된 말로, ‘아직 세상을 모르는’ 상태를 표현하는 숫자 이전의 말이다. 그리고 ‘백일’은 생후 100일을 뜻하는 숫자 표현이지만, 동시에 아기가 무사히 자랐음을 축하하는 전통문화적 이정표로 사용되어 왔다. 이처럼 숫자는 단순한 나이 계산을 넘어서, 문화와 감정이 스..

한글 이야기 2025.04.09

시간을 재는 또 다른 단위, '밤 한정', '이레', '달포'의 진짜 의미

– 숫자보다 정서를 재던 옛날의 시간법 –  숫자 없이 시간을 표현하던 시대현대사회에서는 시간을 분, 시간, 일, 주, 월, 년 단위로 나누어 측정한다. 그러나 옛날 한국 사람들은 그보다 훨씬 더 정서적이고 체감적인 단위로 시간을 표현했다. 하루를 ‘해 뜰 무렵’, ‘점심 무렵’, ‘달이 떴을 때’라고 표현하거나, 시기를 ‘꽃 피는 때’, ‘김장 담글 철’이라고도 했다. 이런 감각은 언어에도 그대로 녹아들어 ‘이레’, ‘달포’, ‘반달’, ‘밤 한정’ 같은 독특한 시간 단위를 만들어냈다. 이 글에서는 그중에서도 특히 흥미로운 세 단어, ‘이레’, ‘달포’, ‘밤 한정’을 중심으로, 우리말 속 시간 개념과 언어적 감각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레’ — 일주일이라는 말보다 부드러운 우리말‘이레’는 오늘날 ‘..

한글 이야기 2025.04.08

'사랑', '정', '한'… 감정을 표현한 한국어 단어의 깊이

– 말로는 다 담기지 않는 마음의 온도 –   사랑, 단어 하나에 담긴 감정의 거울한국어에서 ‘사랑’은 단순한 애정을 넘어, 관계의 형태와 깊이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확장되는 감정 표현이다. 연인 간의 사랑뿐 아니라, 부모 자식 간의 사랑, 나라를 향한 사랑, 이웃을 향한 사랑 등으로 쓰이며, 각 맥락마다 미묘한 감정의 결이 달라진다. 한국어의 '사랑하다'는 본래 ‘사랑스럽다’는 형용사적 감각에서 출발했으며, 여기서 ‘사’는 ‘좋다’의 옛말, ‘랑’은 정을 의미한다는 어원 분석도 있다. 이처럼 사랑이라는 말은 단순한 감정보다도 그 사람과의 관계와 정서를 품은 복합어로 기능하며, 우리 언어 속에 감정의 방향성과 온도를 섬세하게 전달한다.  정(情), 끈질긴 관계의 언어‘정’은 한국어에서만 독특하게 발전한 ..

한글 이야기 2025.04.08

시간을 재는 또 다른 단위, '밤 한정', '이레', '달포'의 진짜 의미

– 숫자보다 정서를 재던 옛날의 시간법 –   숫자 없이 시간을 표현하던 시대현대사회에서는 시간을 분, 시간, 일, 주, 월, 년 단위로 나누어 측정한다. 그러나 옛날 한국 사람들은 그보다 훨씬 더 정서적이고 체감적인 단위로 시간을 표현했다. 하루를 ‘해 뜰 무렵’, ‘점심 무렵’, ‘달이 떴을 때’라고 표현하거나, 시기를 ‘꽃 피는 때’, ‘김장 담글 철’이라고도 했다. 이런 감각은 언어에도 그대로 녹아들어 ‘이레’, ‘달포’, ‘반달’, ‘밤 한정’ 같은 독특한 시간 단위를 만들어냈다. 이 글에서는 그중에서도 특히 흥미로운 세 단어, **‘이레’, ‘달포’, ‘밤 한정’**을 중심으로, 우리말 속 시간 개념과 언어적 감각을 살펴보고자 한다.‘이레’ — 일주일이라는 말보다 부드러운 우리말‘이레’는 오늘..

한글 이야기 2025.04.07

전통 악기 이름에 담긴 소리의 철학

– 이름만 들어도 들리는 소리, 말이 가진 울림 –  소리를 말로 짓다 — 전통 악기의 이름은 왜 중요한가?한국의 전통 악기들은 단순히 소리를 내는 도구가 아니다. 그 이름 자체가 소리의 특성, 기능, 그리고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 ‘장구’, ‘가야금’, ‘대금’, ‘징’, ‘꽹과리’처럼 이름만 들어도 소리의 분위기나 성격이 연상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국어는 소리의 질감과 울림, 타격의 방식까지 이름 속에 담아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이 글에서는 한국 전통 악기들의 명칭이 어떤 방식으로 지어졌으며, 그 안에 담긴 언어적 의미와 감각을 통해 전통 소리 문화의 깊이를 들여다보고자 한다.장구와 북 — 리듬을 말하는 이름‘장구’는 한국 전통 타악기의 대표주자다. 이름부터 특이한 이 악기는 한자 ‘杖鼓’에..

한글 이야기 2025.04.07

우리말 속 동물 이름의 상징성과 어원 이야기

– 익숙한 동물 이름 속에 숨겨진 말의 그림자 –   호랑이는 왜 용맹의 상징이 되었을까?‘호랑이’는 한국인의 언어 감각 속에서 용맹함, 권위, 위엄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단군 신화에서부터 조선시대 민화, 무속 신앙에 이르기까지 호랑이는 언제나 ‘강한 존재’였다. 우리말에서 “호랑이 같다”는 표현은 단순히 무서운 성격을 넘어, 절대적인 힘과 보호의 상징을 내포한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란 관용 표현은 오래된 옛날 이야기를 재치 있게 꺼낼 때 쓰이는데, 이 또한 호랑이가 얼마나 오래된 신화적 존재로 인식되어왔는지를 보여준다. 흥미롭게도 '호랑이'는 고유어 '범'에 접사 '랑'과 '이'가 결합된 합성어로, 원래의 순수 표현은 '범'이었다. 이런 언어 구조는 단어 속에 민족의 문화와 창의적 감..

한글 이야기 2025.04.06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말 — 전통 기상 표현 이야기

구름 한 점에도 의미를 붙이고, 바람결 하나에도 이름을 붙이던 시절이 있었다. 전통 기상 표현은 자연을 바라보는 언어이자, 사람의 마음이 담긴 기록이었다.  1. 하늘을 보며 말을 만들던 사람들요즘 우리는 날씨를 스마트폰으로 확인한다. 몇 시에 비가 오는지, 기온이 몇 도인지, 미세먼지는 얼마나 되는지 숫자와 색깔로 바로 알 수 있다. 하지만 옛사람들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날씨를 읽었다. 햇살의 각도, 바람의 결, 구름의 무늬, 별의 위치 같은 것들이 그들의 예보였다. 그리고 그렇게 체감한 날씨를 말로 풀어냈다. ‘삭풍이 분다’, ‘노을이 붉다’, ‘개밥바라기가 떴다’ 같은 표현에는 정보 이상의 정서와 풍경이 담겨 있다. 단순한 기상 정보가 아닌, 자연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던 태도가 언어에 스며든 것이다..

한글 이야기 2025.04.06

편지보다 느린 말 — 구술 문화 속 말의 무게

기록되지 않아도 오래 남는 말이 있다. 종이에 적기엔 서툴지만, 입으로 전해지는 말은 마음을 타고 흐른다. 구술 문화 속 말들은 그렇게 사람 사이를 천천히, 깊게 흘러갔다.  1. 말이 글보다 먼저였다사람이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역사적으로 보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문자가 생기기 전에도 사람들은 수천 년 동안 말로 모든 것을 전했다. 삶의 지혜, 감정, 전설, 사랑… 모두 ‘입’과 ‘귀’ 사이에서 전달되었고, 그 말들은 바람처럼 전해지고, 사람을 따라다니는 기억이 되었다. 우리는 그것을 '구술(口述)'이라고 부른다. 말로서 이어지는 문화. 종이도, 잉크도 없이 오직 목소리로 이어지는 삶. 그 시절의 말들은 빠르지 않았고, 정제되지도 않았지만, 그만큼 더 조심스럽고, 깊이 있었다. 이번 글에서는 그런 구..

한글 이야기 2025.04.06

말의 색깔, 색을 표현하는 옛말과 감정의 연결

색을 품은 한국어, 감정이 묻어나는 단어들한국어는 오랜 세월 동안 감정과 상황을 색으로 표현하는 데 탁월한 언어 감각을 보여주었다. 단순히 색을 구분하는 언어를 넘어, 사람의 심리와 사회적 분위기, 때로는 정체성까지도 색채로 은유해왔다. 예를 들어, ‘붉다’는 단어는 단순히 빨간 색을 넘어서 ‘분노’나 ‘뜨거운 열정’, ‘수줍음’ 같은 감정 상태를 전달한다. “얼굴이 붉어졌다”라는 표현은 부끄러움이나 당황스러움을 나타내는 전형적인 예다. 또한 ‘파랗다’는 색은 시원함과 청량함의 감각을 줄 뿐 아니라, ‘파란만장하다’, ‘파란을 겪다’와 같은 말에서는 격렬한 인생의 굴곡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처럼 색을 통한 감정 표현은 한국어 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옛말 속 색 표현의 문화적 상징성조선시대 문헌이나 ..

한글 이야기 2025.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