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이야기

할머니 말 속에 숨어 있는 한글 옛말 사전

온테라 2025. 4. 19. 12:00

– 잊힌 말 속에서 삶의 결이 들려옵니다 –

 

 

한글로 읽는 세대의 말, 왜 다를까요

같은 한글을 쓰더라도, 할머니가 하시던 말은 지금 우리가 쓰는 말과 어딘가 다릅니다.
“에그머니나 세상에나”, “어데 가는 기가”, “거시기 좀 줘봐라” 같은 말들에는
한글 고유의 감정, 억양, 관계의 결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단어 하나에 감정이 있고, 문장 끝에 마음이 실려 있었죠.
그 말들을 들으면 단지 뜻이 아니라, 그 말이 태어난 시대의 공기와 분위기까지 함께 떠오릅니다.
한글은 단지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삶의 태도와 감정을 전하는 그릇이었습니다.

 

한글 속 생활 언어로 남은 옛말의 풍경

“재수복덕도 없다”는 말은 운이 없는 상황을 구수하게 표현한 옛말입니다.
그 속에는 한탄과 체념, 그리고 유쾌한 자기 풍자가 동시에 담겨 있죠.
‘심통 부리다’, ‘까불다’, ‘궁싯거리다’, ‘똘기 있다’, ‘곱상하다’ 같은 표현은
요즘은 사라지거나 희화화되었지만, 감정을 풍성하게 묘사하는 한글 표현의 진수였습니다.
“참말로 그랬나”에서 느껴지는 ‘참말’은 ‘진심으로 믿는다’는 정서적 신뢰를,
‘거시기’는 맥락으로 소통할 줄 알았던 한국어의 여백과 유연함을 상징합니다.

할머니 말 속에 숨어 있는 한글 옛말 사전

사투리 속에서 살아 숨 쉬는 한글 옛말의 구조

많은 옛말은 사투리와 어우러져 더 입체적인 말맛을 만들어 냈습니다.
“고마 하그라”, “그라고 혀”, “나가 댕기다”, “아이구 나 죽는다” 같은 표현은
소리만으로도 정서와 감정이 직관적으로 전달되는 언어적 에너지를 품고 있었지요.
이 말들 속에는 이성보다 감정이, 논리보다 공감이 먼저였습니다.
‘어데 가노’처럼 단순한 말에도 억양 하나로 애정, 걱정, 추궁이 모두 담기곤 했습니다.

또한 할머니들의 말은 노래하듯 흐르는 리듬과 말끝의 여운이 특징입니다.
“밥 묵었나?”, “그래도 그 사람은 말이지…” 같은 문장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정서적인 위로와 연결을 전달하는 말이었습니다.
한글이 소리를 통해 감정을 전했던 대표적인 예들이기도 하죠.

 

한글 옛말이 품은 관계의 기술

할머니의 말은 대부분 짧지만 온기가 있었고, 단호하지만 정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얘기하면 말이 아니지”, “말은 곱게 해야지” 같은 말들은
내용보다 태도와 말투,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존중을 강조하던 문화의 흔적입니다.
말이 사람을 만든다고 여겼던 시대, 한글은 단어보다 말맛을 중시하던 정서적 언어였습니다.

게다가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 “입이 싸다”, “입밖에 내지 마라” 같은 속담도
말을 둘러싼 관계, 신뢰, 예절을 조절하는 도구로서의 언어 기능을 드러냅니다.
이러한 말의 구조는 단순한 커뮤니케이션을 넘어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는 매개체이기도 했습니다.

 

사라지는 한글 옛말, 왜 다시 돌아봐야 할까요

언어는 시대에 따라 변하지만, 감정을 품은 말은 그 자체로 세대 간 감수성의 연결고리입니다.
‘쓸쓸하다’, ‘가엾다’, ‘허전하다’, ‘속이 상하다’ 같은 말은 감정의 진폭을 표현하기에 적합했지만,
요즘의 언어는 “찐이다”, “현타 온다”, “에바야” 등으로 간결하고 즉각적인 반응에 초점이 맞춰져 있죠.
그만큼 감정은 압축되고, 말의 결은 단절되고 있습니다.

옛말은 단지 정보가 아니라 정서를 감싸는 방식이었습니다.
속도가 아니라 온도가 중요하던 시절, 말은 천천히 흐르면서 마음을 다독였습니다.
그 말들을 잊는다는 건, 결국 한글이 감정을 다루던 방식을 잃는다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한글 옛말을 다시 입에 올리는 일

“손버릇이 없다”, “입이 간지럽다”, “말이 곱다”, “눈치가 빠르다” 같은 표현은
표면적 의미를 넘어서 관계 속에서 사람을 살피고 감정을 나누는 말이었습니다.
할머니가 하시던 “참말로 사람 복은 있다”는 말은 단지 칭찬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시선과 사람을 대하는 온기를 함께 전해주는 말이었지요.

우리가 그 말을 잊으면, 그 말이 품고 있던 감정과 문화, 관계의 감촉도 사라집니다.
하지만 한글은 기억의 언어입니다.
옛말을 다시 꺼내 말하면, 그 시절의 정서도 함께 되살아납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잊히는 말들을 다시 불러보는 일입니다.
할머니의 말은 사라진 말이 아니라, 우리가 다시 꺼내야 할 말입니다.
한글의 감정은 옛말 속에서 아직 살아 있고,
그 말을 다시 말하는 순간, 한글의 따뜻한 결도 함께 돌아옵니다.